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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영 장편소설 [봉순이 언지] 中..
작성자
작성일
2010-06-09
조회
7996

★ 공지영 장편소설 [봉순이 언지] 中..

그때 깨달아야 했다. 인간이 가진 무수하고 수많은 마음갈래 중에서 끝내 내게 적의만을 드러내려고 하는 인간들에 대해서 설마 설마, 희망을 가지지 말아야 했다. 그가 그럴것이라는 걸 처음부터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혹시나 하는 그 희망의 독.
이런 경험을 그 이후에도 무수히 반복하면서도 나는 왜 인간이 끝내는 선할것이고 규칙은 결국 공정함으로 귀결될 거라고 그토록 집요하게 믿고 있었을까. 이런 일이 그 장소의 특수한 사건이라고, 그러니 그때 나는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그토록 굳세게 믿고 있었을까? 그건 혹시 현실에 대한 눈가림이며, 회피, 그러므로 결국 도망치는 것은 아니었을까.

아마도 그때 알아야 했으리라.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도, 아주 오래도록, 사람들은 누구나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막다른 골목에 몰릴 지경만 아니라면,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사실조차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그렇다고 이미 생각해온 것. 혹은 이랬으면 하는 것만을 원한다는 것을. 제가 그린 지도를 가지고 길을 떠났을 때, 길이 이미 다른 방향으로 나 있다면, 아마 길을 제 지도에 그려진대로 바꾸고 싶어하면 했지, 실제로 난 길을 따라 지도를 바꾸는 사람은 참으로 귀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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