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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3-03 15:31
김구·유관순·안중근 등… 컬러 사진으로 복원된 독립운동가들
 글쓴이 : abxieu
 

김구(1876-1949)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령·주석 등을 역임했다.

한인애국단 의거를 주도하고 한국광복군을 창군하였다.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김좌진(1889-1930)

대한광복회 부사령관으로 활약하고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을 지도했다.

북로군정서 사령관으로서 1920년 청산리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삼천리 금수강산에 왜놈이 웬 말인가

단장의 아픈 마음 쓸어버릴 길 없구나

 

 

베델(1872-1909)

1904년 영국 기자로 내한하여 대한매일신보를 발행했다.

언론으로 일본의 경제침탈을 비판하고 국내외 독립운동을 보도했다.

?나는 죽을지라도 대한매일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민족을 구하게 하시오

 

 

송진우(1890-1945)

일본 유학 후 1921년부터 동아일보 사장으로 취임하여 언론운동을 전개하고, 민립대학설립운동을 지원했다.

?옥중에 갇힌 몸이 밤마다 잠 못 이루니 나라 근심에 상한 마음 몇몇해나 쌓였던고

 

 

안중근(1879-1910)

교육사업과 의병운동을 전개하고 단지동맹을 결성했다.

1909년 10월 26일 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성공하였다.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

 

 

안창호(1878-1938)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에 선출되었고 청년단체 흥사단을 조직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노동국 총판 및 내무총장 등으로 활동했다.

?낙망(落望)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유관순(1902-1920)
1919년 서울에서 3·1만세운동에 참여하고,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윤동주(1917-1945)
연희전문학교에서 <서시> 등 민족시를 발표하였다.

1942년 징병제 반대 시를 집필하는 등 민족문학 활동을 지속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봉길(1908-1932)
중국으로 망명하여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에서 일본 수뇌부들에게 폭탄을 던져 독립의지를 드높였다.

?사나이 뜻을 세워 집을 나가면 뜻을 이루지 않고서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으리라

 

 

이회영(1867-1932)
1911년 만주에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설립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과 무정부주의 운동에 참여했다.

?독립을 위해서는 먼저 백성을 깨우쳐야 한다

 

 

조소앙(1887-1958)
1913년 동제사와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했다.

임시정부의 정당인 한국독립당을 창당하고 삼균주의 강령을 기초했다.

? 三均主義-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제도와 개인과 개인, 민족과민족, 국가와 국가간의 호혜평등으로 민주국가 건설하자

 

 

최재형(1860-1920)
러시아 한인들을 보호하고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1908년 항일단체 동의회를 조직하고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총장에 선출되었다.

?러시아 추위보다 나라를 잃은 나의 심장이 더 차갑다

 

 

한용운(1879-1944)
1919년 3.1운동에 민족대표 33인 중 1인으로 참여하였다.

민립대학기성회 중앙집행위원을 역임했고, 신간회 경성지회장으로 활동했다.

?참된 평화는 반드시 자유를 함께 해야 한다 

 

 

헐버트(1863-1949)
잡지 <한국평론>을 창간하여 일제 침략을 비판했다.

1907년 고종의 헤이그밀사 파견을 지원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사원에 묻히기보다 한국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28일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기념일인 4월 11일까지 서울 광화문광장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형 전광판을 통해 송출

 

 

 

출처

https://v.daum.net/v/20230227184702912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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