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은 실수를 한다고 하지만 실수를 할 때면 뼈아픈 것이 사실이다. 특히 말도 안 되게 기초적인 부분에서 실수를 할 때면 이제껏 뭐했나 싶고 그간의 시간들이 의미 없게 느껴지곤 한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다양한 사회적 상황을 만나게 되지만, 여전히 사람의 마음이란 열 길 물 속보다 어려운 탓에 늘 새롭고 여전히 어색한 미소를 흘리게 된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조금 더 익숙해지겠거니 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과제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물론 이러한 시련이 닥쳐올 때마다 마음챙김을 기억하고 내가 지금 느끼는 좌절감과 실망감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곧 지나갈 거라고 심호흡을 하곤 한다. 인생은 원래 좌절로 가득 차 있으며 좌절이 아닌 순간이 오히려 선물임을 상기하기도 한다. 또한 자기자비의 가르침에 따라 이럴 때일수록 나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에 힘입어 여태껏 버티고 있지만 최근 한 가지 더 좋은 팁을 찾았다. 바로 “작은 자아”다.
비대한 자아는 비현실적인 기대들로 가득차 있는 탓에 작은 좌절에서 펑 소리를 내며 크게 터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들이 있었다. 또한 자아가 지나치게 고양되어 있을수록 보다 높은 곳에서 추락하는 탓에 자아에 작은 상처라도 나면 배로 큰 아픔을 겪게 된다.
만약 이 때 타인에게 우러러보여지고 대접받고자 하는 욕구가 크다면 왜 자신을 대접해주지 않냐며 주변에 공격성을 보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듀크대학의 심리학자 마크 리어리는 건강한 자존감은 “이미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삶”에서 오며 아무리 높더라도 비현실적인 상상들을 기반으로 부풀려진 자존감은 건강하지 않다고 보았다.
여전히 작은(?) 실수들에도 좌절하고 스스로에 대해 실망하는 나를 보고 여전히 지나치게 큰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되었다. 사람들 앞에서 쭈뼛쭈뼛 하는 것도, 어색한 미소를 날리는 것도, 부끄러움이 많은 것도 어느 정도는 타고난 성격 탓이요 내 잘못이 아닌데, 이미 충분히 잘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데 괜히 높은 기대를 가지고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묻게 되었다.
자아가 없는 “무아”의 상태까지는 가지 못하더라도 나라는 존재는 영원한 것도, 그 자체로 대단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많은 기대를 하고 일일이 실망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나라는 존재는 영원하지 않다. 나의 실체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작고 길가에 난 풀이나 돌맹이와 다를 바 없는 존재다’ 하고 마음속으로 외워보았다. 그러자 의외로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나라는 존재가 영원하지 않고 그 자체로 대단하지 않은 만큼 나를 향한 실망 또한 크게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로 고만고만한 존재들이며, 이들의 나를 향한 기대나 실망, 미움 또한 크게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삶을 당분간 괴롭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결은 조금 다르지만 축소된 자아의 효과를 보여주는 연구들이 있었다. 캘리포니아 어바인 대학교의 심리학자 폴 피프(Paul Piff)에 의하면, 사람들에게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사진을 보게 하거나 높은 나무 위에 서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상상을 하게 하는 등 상대적으로 작은 자신을 지각하게 하면 좀 더 타인에게 너그러워지고 욕심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난다. 내 존재의 사소함을 깨닫는 것은 때로 자신을 향한 집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나의 슬픔과 좌절 모두 적지 않은 부분이 나를 향한 나의 집착에서 비롯된다. 물론 현대사회를 살면서 나의 상태를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할 때가 존재하지만, 이따금씩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우리는 보통 어쩔 수 없는 삶의 무게에 더해 내가 내 어깨 위에 잔뜩 올려 놓은 짐들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덜 수 없는 짐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덜 수 있는 짐들이 있다면 그것들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에서부터 마음의 평화가 시작되지 않을까.
Piff, P. K., Dietze, P., Feinberg, M., Stancato, D. M., & Keltner, D. (2015). Awe, the small self, and prosocial behavior. Journal of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8(6), 883–899. https://doi.org/10.1037/pspi0000018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http://n.news.naver.com/article/584/0000022100?mode=LP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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