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세상엔 괜찮은 남자가 없니?” 자칭 ‘괜찮은 여자’ ㄱ씨가 불만을 터뜨린다. 올해도 크리스마스는 영화 <나홀로 집에>의 케빈을 애인 삼아 보내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내 여자친구들은 신의 경지에 이른 ‘화장신공’을 발휘해 주말마다 소개팅에 힘쓰고 백만년 동안 잊고 지내던 옛 애인에게 안부 문자를 남긴다. 이처럼 발버둥치는 솔로들을 넌지시 쳐다보던 풋풋한 연애 석달차 ㄴ양은 새로 사귄 남자친구가 집까지 바래다주지 않는다고 툴툴거려 보던 솔로들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내가 “넌 다리가 없냐? 걔랑 너랑 집이 2시간 거린데 뭘 꼭 데려다줘야 되는데?”라고 물었더니 ㄴ양 정색을 하며 “넌 역시 연애를 몰라”라고 대답한다. 이 험악한 세상에 던져진 여자친구를 위해 당연히 데려다줘야 하는 것이 아니겠냐, 그것이 연애를 하는 묘미가 아니겠냐는 ㄴ양의 야무진 항변에 다른 친구들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석달 전까지만 해도 있는 돈을 탈탈 털어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씩씩하게 집으로 걸어오던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연애가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나는 왜 연애만 시작하면 그 활달하고 경우 바르며 씩씩하던 여자아이들이 갑자기 너나할 것 없이 공주님이 되는지 참 궁금하다. 나 역시도 누가 나를 공주님처럼 대해 주면 좋아하겠지만, 남자친구가 손바닥만한 핑크색 핸드백까지 들어줘야 할 정도로 여자들이 약한 건 아니지 않은가? 나랑은 언제나 똑같이 더치페이하고 때로는 월급을 탔다며 쏘기도 하는 화통한 그녀가 왜 남자친구만 만나면 그녀의 지갑은 조개처럼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처럼 내 앞에서와는 너무 다른 그녀들의 모습에 나는 깜짝 놀란다.
물론 여자들의 급격한 변신은 그녀들만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온갖 드라마와 버라이어티쇼에서 남자 연예인들은 그들의 이상형으로 애교 많고 귀여운 여성을 꼽고, 여자 연예인들은 머슴을 찾는다. 말도 안 되는 일로 토라지고 삐쳐도 귀엽다는 이유로 용서가 되고 남자의 능력은 여자친구에게 어떤 선물을 할 수 있느냐로 결정되는 요즘의 문화는 어서 빨리 ‘악녀’가 되라고 여자들의 등을 밀고 있다.
나는 남자들의 고생을 덜어주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못하는 공주님보다 내 앞에서처럼 남들을 배려하고 모든 일에 적극적인 모습이 훨씬 더 멋지다는 것을 내 여자친구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얘들아, 만약 너희의 진정한 모습을 보고 귀엽지 않다는 이유로 이별을 통보하는 변변찮은 남자가 있다면 올해 크리스마스는 케빈과 나와 함께 즐겁게 보내자꾸나.
우효경/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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